「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의논하고 싶어서요…….」
몇 해 전 진로 고민으로 각기 나(승오)를 찾아온 두 직장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이와 경력이 비슷했다. 모두 30대 초반이었고, L전자와 S전자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5~6년째 일하고 있었다. 둘 다 기업교육(HRD) 쪽의 일에 관심이 있어 직무 변경을 원했는데, 그 동기는 조금 달랐다. A는 자신의 일이 ‘보람이 없다. 혼자 틀어박혀 연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B는 지금 하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공학을 전공했지만 HRD로 진로를 바꿨기에 그들의 고민이 이해가 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며 지금의 일에서 재능을 살려 해볼 수 있는 일들, 예컨대 사내 강의나 지도 선배 같은 걸 맡아서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연초가 되자 두 사람은 사내에서 직무 전환을 통해 인사팀으로 이동했음을 각각 알려 왔다. 불과 몇 달의 시간차를 두고 흥분과 기대에 찬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축하를 전하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호기심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게 되었다. 과연 이들의 진로는 어떻게 펼쳐질까?
시간이 흘러 나 또한 대기업 연수원으로 이직했고, 사내 교육 담당자들의 콘퍼런스에서 우연히 A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며 ‘참 잘됐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 그의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커피 잔을 홀짝이던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교육 부서에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 만나는 건 보람 있는데 만져지는 성과가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공부했던 걸 썩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새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어요.」
보람은 있는데 뒤처지는 것 같다니, 의외였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옮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몇 개월 뒤, 그가 그토록 탈출하고 싶어 했던 예전의 연구소로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보람 없다던 일로 복귀한 것이다. 반면 B의 소식 역시 동료를 통해 가끔씩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역시 부서 이동을 했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교육이 아닌 인사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같은 인사팀 안에서도 교육(HRD)과 인사관리(HRM)는 기본 철학과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 나는 그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리라 예상했다.
예상대로였다. 인사관리 중에서도 해외 인력 채용을 담당했던 그는 이전 부서와는 완전히 다른 업무와 용어, 성과에 대한 압박감, 인사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에 적잖이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자 했다. 대규모 채용 설명회에서 발표를 자청해서 맡았고, 해외 인재를 찾아 개별적으로 설득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후 교육 업무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져 지금은 직원들의 직무 교육을 담당하며 사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람 있어서 좋아요, 이 일은!」 그가 말했다. A에게서 들을 줄 알았던 ‘보람’이란 말을 B에게서 들으니 어리둥절했다.
몇 년간 이들의 궤적을 근거리에서 살펴보면서 궁금했다. 둘의 진로는 왜 그렇게 달라졌을까? A는 희망 직무를 맡았음에도 왜 그리 빨리 되돌아갔을까? B는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일을 즐길 수 있었을까? 이제는 그 차이를 알 것 같다. A는 보람을 원했지만, 자신이 무엇에 보람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원했던 보람은, 만져지는 성과나 성취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고, 다만 자신이 싫어하는 일(=지금 하고 있는 일)만 알고 있었다. 반면 B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어떤 직무에서건 자기 강점을 활용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보았다. 일의 보람은 결과로 따라왔다. A와 B의 진로는 자신이 원하고 잘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통찰에서 갈렸다. 결국 ‘자기 이해’가 진로의 향방을 결정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케바케 case by case인 무수한 진로 고민들은 본질적으로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진로 고민의 본질은 내가 진정 무엇을 잘하고 원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나를 찾아왔던 A와 B의 커리어는 바로 이 ‘나’에서 갈렸다.
과학사가 토머스 쿤의 말처럼 어떤 대답을 얻는가는 어떤 질문을 했는가에 달려 있다. 새로운 삶에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진정 나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를 질문해 보라. 릴케가 말했듯이 질문을 사랑하며 품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 질문의 해답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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