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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승오 박

미래: 유망 직종은 없다



1872년 미국 서머스카운티의 탤컷에서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당시 증기 기관의 발달로 각종 작업에 사용하는 기계들이 발명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증기 드릴이었다. 탤컷의 터널 공사에 증기 드릴이 도입되자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노동자들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이 공사장에서 가장 힘이 센 노동자였던 존 헨리는 증기 드릴과 대결을 벌이기로 마음먹는다. 기계보다 인간이 더 강하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을 앞에 두고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둘 중 누가 먼저 터널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오는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증기 굴착기는 오른쪽에서 존 헨리는 왼쪽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계가 앞서 나갔다. 그러나 헨리는 기운을 내어 따라붙었다. 시합 내내 양편으로 무수히 튀는 돌조각들처럼 기계와 인간은 각축전을 벌였다. 꼬박 24시간이 걸린 터널 뚫기 대결에서 존 헨리는 간발의 차로 승리를 거뒀다. 동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곧 탈진하여 쓰러졌고 다음 날 숨을 거두고 말았다. 휴식 없이 너무 무리해서 힘을 쏟은 탓이었다. 이 일은 산업 시대의 도래라는 거대한 변화의 단면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널리 퍼져 나갔다. 이후 인간의 육체가 담당했던 일들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 이후 인간은 노동을 육체에서 지식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블루칼라의 시대는 저물고 화이트칼라의 시대의 문이 열렸다.


인공 지능과 4차 산업혁명


지금, 존 헨리의 이야기와 똑같은 대결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기계와의 힘겨루기는 이제 인간의 지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체스 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는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에게 패했다. 2011년엔 컴퓨터 ‘왓슨’이 퀴즈쇼의 최다 우승자 켄 제닝스를 꺾었다. 그리고 구글의 알파고는 세계 바둑의 최강자 이세돌과 커제 등에게 연이어 승리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지구의 원자 개수보다 많아서 인간 지성의 마지막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더 이상은 아니게 되었다. 이세돌은 2019년 37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보통 바둑 기사의 경력 정점이 40대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최근 한 TV 예능에서 ’알파고가 이른 은퇴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바야흐로 기계가 인간의 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사고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미래에 인공 지능이 빼앗아 갈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인공 지능이 인간의 모든 지성에 위협적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인공 지능은 주로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체스와 바둑, 퀴즈쇼가 모두 논리적 사고를 주로 다루는 좌뇌의 게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감정과 상징의 영역인 우뇌는 컴퓨터가 쉽게 점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노동이 뇌의 왼쪽에서 오른쪽 영역으로 이동하게 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례로 세계적인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미래 사회를 이끌 키워드로 디자인 design, 스토리story, 조화 symphony, 공감 empathy, 놀이play, 의미 meaning를 꼽았는데, 이 6가지는 모두 우뇌의 영역에 해당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인공 지능이 쉽사리 흉내 내기 힘든 창조성의 시대로 이동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성은 직업 안에서만 발휘되는 게 아니다. 새 시대는 직업조차 창조의 대상이다. 인공 지능에 의해 많은 직업이 대체되거나 사라지겠지만, 또한 많은 직업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다. 정보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맞춤 직업’을 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욕구도 점점 더 분화되면서 그에 맞춰 수많은 틈새시장이 조성되고 있다. 비단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앱 개발자 같은 IT 분야뿐 아니라 수제 맥주 전문가, 애완동물 행동 교정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농촌 관광 플래너 등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직업 사례는 매우 많다.


기업에서도 전통적인 직무 구분을 넘어선 새로운 역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직급 체계의 단순화나 태스크포스팀(TFT)의 상시 운영, 애자일 Agile 조직 등의 정책을 통해 보다 개별적인 인사 관리가 가능해지고 있다. 직원들의 커리어 패스(CDP)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대표적인 예가 ‘전문가 트랙’의 추가다. 전통적으로 임원이 되기 위해서 사업가(경영 일반)나 부문장(펑션 리더)이 되어야 했다면 이제는 한 분야의 전문가(기술 임원)로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임원급의 대우를 받는 ‘마스터’나 ‘전문 위원’ 등으로 불리는 이 직책은 조직 관리에 대한 책임이 덜한 대신 전문 분야 연구에 몰두한다.


이런 사례들은 충분히 전문적이기만 하다면 자신을 직업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는 대신 직업을 자신에 맞게 재단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세계적인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는 ‘우리에게는 인간이 경험한 이래 최초로 인생을 일에 맞추는 대신, 인생에 맞춘 일을 창출할 기회가 생겼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커리어 전략 역시 창조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수명 연장과 상시 구조조정


평균 수명의 증대는 메가 트렌드다. 수명 연장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지난 200년에 걸쳐 10년마다 2년 이상 꾸준히 증가했으며, 의학 기술의 발달로 적어도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그 속도가 계속 빨라질 것이다. 이제 100세 인생은 현실이 되었다. 의학 전문지 『란셋The Lancet』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절반 이상이 백 살 넘게 살게 된다. 지금(2020년) 시점에서 40세인 사람이 95세 이상 살 가능성도 절반에 달한다. 이 추세라면 지금의 20대가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2040년경에는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어설 수도 있다.


수명 연장과 더불어 조기 퇴직의 트렌드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상시 구조조정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50대 임직원 비율은 5퍼센트가 안 되며, 대졸 신입 사원이 임원이 될 확률은 1000명 중 5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임원이 되지 못한 50대는 썰물처럼 밀려나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인이라면 통계를 볼 것도 없이 본인 주변만 살펴봐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얼마나 오래 일해야 하는가와 직결된다. 기성세대는 대학을 졸업하면 30년간을 직장에서 돈을 벌 수 있었다. 퇴사하면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 하나를 차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노후를 보내는 것이 보편적인 라이프 사이클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20년 현재 직장인의 평균 퇴직(자발적 퇴사이든 해고이든) 연령은 49세다. 당신이 만약 49세 이상의 직장인이라면 운이 좋은 것이다.


49세를 전후로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면 이후 살아갈 날들이 거의 살아 온 날들만큼 남아 있다. 직장을 나온 후 40~50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분명한 건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나 연금은 터무니없는 수준이고, 웬만한 저축으로도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퇴사 후 확실한 직업이 없다면 힘겨운 시절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수명 연장과 조기 퇴직의 트렌드는 직장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제 직장 생활은 인생 전체 중 ‘한때’를 머무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제 우리는 퇴직 후에도 30년은 더 일하는 ‘50년 커리어’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경제, 연결의 시장


10살 때부터 기타 연주를 시작한 정성하는 2006년부터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리며 기타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유튜브 채널 영상 1억 뷰를 돌파한 주인공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모든 직원에게 선물해 화제가 된 책 『90년생이 온다』는 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연재한 「9급 공무원 세대」가 그 출발점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임홍택은 어느새 100쇄 넘게 찍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난 그저 국숫집 아들일 뿐인데’라는 생각으로 필명을 ‘보통’으로 지은 웹툰 작가 김보통은 대기업을 나와 백수로 지내다 우연히 트위터에 올린 몇 장의 그림을 계기로 데뷔했다. 확실한 전문성이 있으면 네트워크는 이를 손쉽게 시장에 연결해 준다.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요즘 구직자들은 원티드 Wanted나 링크드인 LinkedIn이나 잡코리아, 사람인 등과 같은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취업과 이직을 모색한다. 재능 공유 플랫폼인 크몽 kmong을 통해 1억 이상 거래한 판매자는 2018년까지 100여 명에 이르며 이곳의 판매자 중 90퍼센트는 투잡맨이다. 영화나 연극 등을 만들고자 하는 지망생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이전보다 비교적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브런치’를 자신의 재능을 시험할 무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창업이나 프리랜서를 꿈꾸는 이들은 숨고 soomgo, 탈잉taling 등의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홍보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인류의 발명품은 역으로 인류 전체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연결의 경제는 개인을 시장과 연결해 주고 있다. 꾸준히 노력하여 차별적 전문성을 쌓은 개인은 그야말로 시장을 ‘골라 먹는 재미’를 누릴 수도 있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하여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한 유튜버를 인터뷰한 책 『유튜브 젊은 부자들』에 따르면 거의 모든 성공한 유튜버들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래의 트렌드들이 커리어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조직 안에서 일하며 높은 자리에 빨리 오르는 것이 보장된 성공이 아님은 명백하다. 개인의 재능보다 조직에의 충성이 중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조직을 위해 자신의 개성을 숨기고, 하고 싶은 걸 억누른 채 한낱 부속품에 머무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나’를 발굴하고 직업을 창조하여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 판매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년의 직장 생활은 시장에 판매할 전문성을 심화할 수 있는 수련장이 될 수 있다.


‘평생 직업’을 강조하지만 사실 평생 직업도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이 되고 있다. 하나의 직업으로 40대에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는 종 모양의 곡선은 이제 낡은 모델이 되었다. 경영학자 타마라 에릭슨은 미래의 커리어 경로로 편종형 곡선을 제시한다. ’편종 carillon’은 연속된 여러 개의 종을 말하는 것으로, 그림 6 오른쪽 곡선처럼 현재 직업의 정점이 오기 전에 다음번 직업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여러 번 직업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디 워커가 지향하는 커리어이기도 하다.


자신의 전문성을 다른 분야와 결합하여 진화시키고, 스스로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는 능력이 관건이다. 인디 워커에게는 직장 경력이 아니라 직업 경력이 핵심이다. ’나를 고용하라. 왜냐하면 나는 이 분야의 차별적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 기업이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행여 다른 사람이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나는 자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곧 직업이다.’ 인디 워커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디 워커가 되는 선결 조건은 ‘나’를 아는 데 있다. 여전히 주목받는 트렌드와 유망 직종들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길어진 100년 인생에서 트렌드는 몇 번이나 바뀔 것이다. 유망 직종이 아니라 유행 직종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는 유행 직종보다 자기 이해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그 일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에 서고 있다.

다른 사람이 다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사람은 영리하지 못하다. 그러나 정말 바보는, 알고도 못 하는 사람들이다. 미래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미래는 자신을 깊이 활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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