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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승오 박

진로가 미로처럼 느껴질 때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산골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바다로 가는 변변한 지도조차 구할 수 없어 망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집을 떠났다. 모험의 길에서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잠깐 쉬었다 가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응원해 주는 이들도 있었으며, 바다까지는 너무 멀다며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몹시 지친 상태로 큰 사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길은 커다란 산을 앞에 두고 네 갈래로 갈라졌는데 어느 길이 바다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 길, 저 길을 조금씩 가보았지만 확신할 수가 없어 매번 사거리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마을로 가서 셔츠와 바지를 만들어 시장에 팔기 시작했고 이내 자리를 잡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이따금씩 사거리를 찾아가 어느 길이 바다로 가는 길인지 고민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는데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도 늙어 갔다. 어느덧 노인이 된 그녀는 죽기 전에 네 갈래 길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앞을 가로막은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려 겨우 산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이 훤히 내다보였다. 네 갈래의 길은 산의 좌우로 갈라져 에둘러 뻗어 나가다가 넓은 평원 위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아득히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나의 길을 골라 끝까지 갔었더라면…….’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늙어 긴 여행을 떠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진로(進路)가 미로(迷路)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가늠할 수 없어 제자리를 맴돌기도 하고 행여 막다른 길을 만날까 봐 출발조차 못 한다. 높은 산에 가로막혀 앞을 볼 수 없어 노심초사하고, 길을 떠났다가도 불안감에 다시 되돌아오기도 한다. 대다수의 직장인은 자신의 커리어에 확신이 없으며,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더욱 불안해한다. 코로나19, 인공 지능, 100세 수명, 상시 구조조정 등 우리가 커다란 변혁의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수지만 용기 있게 도전해서 출구를 찾은 인디 워커들도 있다. 직장 생활을 통해 고도의 전문성을 쌓고 퇴직 이후에도 자신만의 사업이나 브랜드로 승승장구한다. 직장 생활에서 승진이나 연봉보다는 일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잘하는 일을 탁월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다. 이렇게 자기만의 차별적 전문성을 만들어 낸 이들은 하나같이 ‘어느 길로 가든 위대함으로 가는 길은 있다’고 조언한다. 하나의 길을 정해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넓은 바다를 만난다는 것이다.


모든 커리어가 미로 maze는 아니다. 오히려 인디 워커들에게 직장 생활은 미궁 labyrinth에 가깝다. 미로와 미궁은 구분 없이 쓰이지만 사실 그 목적이 확연히 다르다. 미로는 여러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출구를 찾기 어렵지만, 미궁은 모든 길이 중심으로 수렴했다가 나오도록 되어 있어 어느 길로 가든 출구로 나올 수 있다. 미로는 출구를 은폐함으로써 길을 헤매도록 만든 장치인 반면, 미궁은 천천히 에둘러 감으로써 정신을 새롭게 고양하는 구조다. 한마디로 미로가 방황의 상징이라면 미궁은 재생의 상징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사르트르 대성당에 들어간 사람은 지름 13미터의 커다란 미궁을 통과해야 재단으로 갈 수 있다. 여기에는 미궁을 걸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참회하며 중심에 도달하고, 거기서부터 영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돌아 나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메디컬 센터는 붉은 바닥에 흰 벽돌로 미궁을 만들었는데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은 마치 명상하듯 이 길을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은 미궁을 거닐며 희망과 치유의 경험을 한다. 모든 미궁은 중심을 향하는 나선형의 구조인데, 영어에서 나선spiral과 영혼 spirit의 어원이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영혼은 미궁을 통과해야 새롭고 진정한 나에 이를 수 있다.


커리어 또한 그렇다. 진로가 미로가 아닌 미궁이 되려면, 속도를 늦추고 중심을 향해 에둘러 갈 필요가 있다. 모든 탁월함에는 시간이 걸린다. 인디 워커는 천천히, 자기답게 잠재력을 실현함으로써 직장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벗어나 자립한다. 느리게 가는 달팽이가 나선형의 껍데기를 등에 지고 살아가듯 우리에게도 자신의 커리어라는 미궁이 있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탁월함에 이를 수 있음을 믿고 나를 부르는 길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 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크레타 왕국의 미궁 속에 살며 제물로 바쳐진 젊은 남녀를 먹어치우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아테네의 부흥을 이끈다. 테세우스가 미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실타래를 주었고 이 도움으로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미궁 안의 모든 길이 중심을 향한다면 테세우스에게 굳이 실타래가 필요했을까?


그럼에도 필요했다. 왜냐하면 테세우스는 그곳이 미궁인지 미로인지 알 수 없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선형의 미궁을 걷다 보면 중심을 향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기에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느껴진다. 이 때문에 미궁 속의 사람은 길을 잃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걷는 길이 미로가 아닌 미궁임을 확인하기 위해 실타래가 필요했다.


인디 워커가 되려는 사람도 이와 같다. 기대감을 가지고 직장에 들어가지만 그 안은 미로처럼 느껴진다. 업무는 버겁고 관계는 얽히며 일 자체가 보람 없이 느껴지곤 한다. 때로 몇 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는 자신을 보며 길을 잃었다고 느낄 수도 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성과에 위축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다. 이 블로그가 그 실타래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전하는 마음으로 이 글들을 썼다.


그러나 당신은 사실 미궁에서는 그 실이 필요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미로 같은 공간이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충실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이 길의 끝에 푸른 바다가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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